많은 아이디어가 발상의 전환이나 우연에서 시작되지만, 상품으로 시장에 나오려면 부단한 노력과 시행착오가 필요합니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실행은 엄두내기 어려운데요. 나만의 아이디어로 창업을 꿈꾸는 여러분에게 견본이 될 ‘창업 노트 훔쳐보기’를 연재합니다.

기능성 안대 '아이겟백'을 개발한 피플파이 정보영 대표. /더비비드

기능성 안대 '아이겟백'을 개발한 피플파이 정보영 대표. /더비비드

지난 10월 12일은 세계 눈의 날이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눈 건강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매년 10월 둘째 주 목요일을 세계 눈의 날로 지정했다. 인공눈물은 현대인의 필수품이 됐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를 보면 안구건조증 환자는 2018년 257.9만명, 2019년 267.9만명, 2020년 243.8만명 등 평균 약 250만명에 달한다.

안구건조증은 안과 질환의 전조증상이기도 하다. 피플파이 정보영 대표(48)의 눈이 딱 그랬다. 인공눈물을 달고 살던 어느 날 안과를 찾았다가 ‘안압이 높아 시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고민을 기회로 삼았다. 사내벤처 공모전에서 기능성 안대를 개발해 2014년 독립 법인을 세웠다. 눈 뜨고 있는 시간 동안엔 늘 ‘눈 건강’ 생각 뿐이라는 정 대표를 만났다.

◇희토류 구워 만든 기능성 안대

피플파이 아이겟백. /피플파이

피플파이 아이겟백. /피플파이
피플파이 아이겟백을 착용한 모습. /피플파이

피플파이 아이겟백을 착용한 모습. /피플파이

아이겟백은 눈의 피로를 해소해 주는 기능성 안대다. 겉보기엔 일반 안대와 다를 바 없다. 핵심은 안대 안쪽 부분에 들어 있는 ‘알틴5′에 있다.

얇은 조약돌처럼 생긴 알틴5는 국내산 희토류를 1100도의 도자기 가마에 구워 만들었다. 알틴5에서는 음이온이 나온다. 음이온은 원자가 음전하의 전자를 얻은 상태로, 세포를 활성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눈 주변에 음이온을 쬐면 눈물샘이 활성화해되는 효과가 있다. 알틴5에선 0.924㎛(마이크로미터)의 원적외선도 방출된다. 안과에서 치료 목적으로 쬐는 적외선램프와 유사한 파장으로 눈의 긴장을 풀어줄 수 있다.

별도로 전력을 공급해 충전할 필요 없이 알틴5가 든 안대를 쓰기만 하면 된다. 어디에나 들고 다니며 틈틈이 사용할 수 있다. 전기를 사용하지 않아 전자파 걱정이 없다.


◇고민거리에서 출발한 아이템 기획

대학시절(왼쪽)과 제약회사 재직 시절(오른쪽). /정보영 대표 제공

대학시절(왼쪽)과 제약회사 재직 시절(오른쪽). /정보영 대표 제공

2002년 동국대 광고학과를 졸업했다. 곧장 모 제약회사에 BM(브랜드매니저)으로 입사했다. 5년간 유아용품(베이비헬스케어)을 담당하다 브랜드 전략 컨설팅 회사 WK마케팅그룹으로 이직했다. “고객사의 기업 운영 전략이나 마케팅 전략을 세우는 일이었는데요. 이렇다 할 경험 없이 이론만으로 설명하자니 늘 한계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던 중 사내벤처 공모전이 열렸다. “회사의 경영진들도 비슷한 고민을 했던 모양이에요. 고객사의 입장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직접 브랜드·제품을 만들어 보자는 취지로 이 프로젝트를 추진했죠.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제품을 기획하기에 앞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나의 고민이 무엇인가’를 돌아보는 일이었습니다.”

인공눈물을 넣고 있는 정 대표. 집안 곳곳에 인공눈물을 뒀다. /정보영 대표 제공

인공눈물을 넣고 있는 정 대표. 집안 곳곳에 인공눈물을 뒀다. /정보영 대표 제공

당시 가장 큰 고민거리는 ‘눈’이었다. “안구건조증이 심했어요. 집안 곳곳에 인공눈물을 뒀을 정도였는데요. 어느 날 눈에 상처가 난 것 같아서 안과에 갔더니 담당의가 ‘상처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더군요. 안압이 높다면서 이대로 가다간 곧 시력이 떨어지거나 녹내장이 올 거란 무시무시한 말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명확한 치료법은 듣지 못했어요. TV·노트북을 보는 시간을 줄이고 규칙적인 운동을 하라는 조언이 그리 와닿지 않았죠.”

눈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진 눈 마사지기, 눈 찜질기 등의 제품을 찾아 분석에 돌입했다. “내심 ‘마음에 쏙 드는 제품이 이미 있으면 어쩌지?’하는 불안함이 있었어요. 새로운 제품을 기획할 필요가 없어질 테니까요. 다행히도 그런 제품은 없었습니다. 가장 두드러지는 단점은 늘 전기가 필요하단 점이었어요. 충전식이라고 하더라도 전자파를 완벽히 막는 건 불가능해 보였죠. 전기 없이 눈의 피로를 풀어줄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전기 없이 눈 피로 풀어주는 아이겟백 개발 노트

1. 공부하는 자에게 힌트가 보인다

국내산 희토류로 만든 알틴5. /피플파이

국내산 희토류로 만든 알틴5. /피플파이

힌트를 얻기 위해 의식의 흐름을 쫓았다. “요가 수업을 들어보면 항상 마지막에 손을 빠르게 비빈 다음 눈 위를 덮어줍니다. 그저 따뜻한 느낌 때문인 줄만 알았는데 논문을 찾아보니 손에서 나오는 원적외선을 활용하기 위한 동작이라고 하더군요. 안과에서 진료가 끝날 때마다 쬐어주는 빨간 빛이 바로 그 원적외선입니다. 피부 속 4㎝까지 침투하는 원적외선은 세포를 진동시켜 혈액순환에 도움을 주죠. 그때부터 원적외선이 나오는 물질에 대해 더 깊이 파고들었습니다.”

뜻밖의 뉴스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2011년 충북 충주시와 강원 홍천군에서 최소 30년, 최대 50년간 쓸 수 있는 희토류가 발견됐다는 소식이었어요. 희토류는 원적외선 방출량이 높은 광물 중 하나죠. 기사를 읽곤 바로 충주로 달려갔습니다. 마침 광산을 소유한 분도 상품화·사업화의 길이 막막했다며 협업 제안에 흔쾌히 응해주셨어요.”

휴대하기 편하고 어디서든 자유롭게 착용할 수 있도록 ‘안대 형태’를 떠올렸다. /피플파이

휴대하기 편하고 어디서든 자유롭게 착용할 수 있도록 ‘안대 형태’를 떠올렸다. /피플파이

희토류를 눈 위에 얹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고민할 것도 없었다. “처음부터 안대 형태를 떠올렸어요. 휴대가 간편해 집·사무실 등에서 자유롭게 쓸 수 있으니까요. 수면 안대 겸용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희토류 조각 2개를 넣었다 뺐다 할 수 있는 작은 주머니를 달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디어 구상이 끝났으니 희토류를 어떻게 가공해 넣느냐를 연구할 때가 됐죠.”

2. 4번의 실패로 얻어진 이름

(왼쪽부터) 알틴1부터 알틴4까지. 외관상 큰 차이는 없었지만 균일하게 만들기 위해 실험을 이어갔다. /피플파이

(왼쪽부터) 알틴1부터 알틴4까지. 외관상 큰 차이는 없었지만 균일하게 만들기 위해 실험을 이어갔다. /피플파이

도자기 생산 공장 위주로 희토류 가공처를 물색했다. 희토류 분말을 물과 섞어 반죽한 다음 구워내는 과정이 도자기 제작 과정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다른 첨가제가 필요한 것도 아니라서 금방 원하는 결과물을 얻을 수 있을 줄 알았어요. 하지만 역시나 뭐 하나 쉬운 일이 없더군요.”


첫 발주 물량 2만개 중 1만9650개를 폐기했다. “전통 불가마에 굽다 보니 열과 가까운 곳에 놓인 조각의 크기가 작아지고 색도 짙어졌어요. 반대로 바깥쪽일수록 크기가 커지고 색이 옅어졌습니다. 온도에 따라 달리 반응한다는 점을 간과했던 거죠. 굽는 시간과 온도를 달리해 가며 수차례 실험을 거듭했어요. 현대식 가마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열로 굽는 방식이기 때문에 균일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어요. 4차례의 실패 후에 얻어진 희토류 조각에 ‘알틴5′라 이름 붙였습니다. 5번째 버전이란 뜻이죠.”


3. 위기는 정면으로 돌파하라

WK마케팅그룹 연말행사 모습(왼쪽)과 정 대표가 아이겟백을 처음 착용한 모습(오른쪽). /정보영 대표 제공

WK마케팅그룹 연말행사 모습(왼쪽)과 정 대표가 아이겟백을 처음 착용한 모습(오른쪽). /정보영 대표 제공

2013년 ‘아이겟백(eye get back·눈 건강 되찾기)’을 출시했다. 알틴5를 안대 양쪽에 넣고 눈 중앙에 맞춰 안대를 쓴 뒤 밴드를 머리 크기에 맞게 조절해 착용하는 방식이다. 출시 직후 온라인몰에서 주간베스트, 월간베스트를 섭렵했다. “사내에서도 놀랍다는 반응이었어요. 전기를 사용하지 않으니 전자파 걱정이 없다는 점이 주효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겟백의 성공에 힘입어 독립을 결심했다. “WK마케팅그룹 대표님도 좋은 사례가 될 거라며 적극적으로 독립을 권하셨어요. 2014년 9월 피플파이 법인을 세우고 바로 다음 아이템 물색에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사업을 이어가던 중 2018년 라돈 침대 논란이 브레이크를 걸었습니다. 일부 침대 제품에서 음이온을 내기 위해 코팅제로 쓴 중국산 희토류가 문제였죠. 프로모션 기간 기준 하루 판매량이 50개에서 5개로 뚝 떨어졌습니다.”

한국광물공사, 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 한국원적외선응용평가연구원 등에서 안전성을 확인받았다. /피플파이

한국광물공사, 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 한국원적외선응용평가연구원 등에서 안전성을 확인받았다. /피플파이

제품을 만들기 전에 확인했던 시험성적서를 모조리 재검토했다. “한국원적외선응용평가연구원의 음이온방출검사와 항균시험성적표, 한국과학융합시험연구원의 유해중금속검출시험, 한국광물자원공사의 희토류성분분석표 등을 다시 살펴봐도 아무 문제가 없었어요. 그래도 안정성 문제이니만큼 완벽을 기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라돈측정기를 직접 구매해 알틴5의 라돈 방출량을 측정했다. “일반적으로 라돈 가스가 4pci(피코큐리)이상일 때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생활 라돈 수치는 1.5pci 정도인데요. 알틴5의 측정값은 0.4pci 이하였습니다. 충주에 있는 희토류 공급사에도 시험성적서를 재차 요구하며 크로스체크(대조 비교 확인)를 마쳤습니다.”


4. 소비자가 말하는 대로

알틴5 한 조각에서 약 700/㎤의 음이온이 방출된다. 두 조각을 눈에 얹고 있으면 1400개/㎤를 쐴 수 있는 정도다. /더비비드

알틴5 한 조각에서 약 700/㎤의 음이온이 방출된다. 두 조각을 눈에 얹고 있으면 1400개/㎤를 쐴 수 있는 정도다. /더비비드

아이겟백을 쓴 이후로 눈의 피로감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두통까지 사라졌다는 글을 심심찮게 발견했다. “알틴5에서 나오는 원적외선과 음이온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원적외선은 몸속으로 침투해 1분에 2000회 이상 세포를 진동시키며 회복을 돕습니다. 음이온은 활성산소, 젖산 등을 관리해 피로도를 낮추는 데 도움을 줍니다. 사람에게 필요한 음이온은 700개/㎤인데요. 알틴5의 음이온 방출량은 1400개/㎤예요. 울창한 숲이나 폭포수 아래에 있는 것과 같은 수준이죠.”


물론 소비자의 칭찬보다 날 선 피드백을 더욱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구매한 제품이 마음에 안 들 땐 버리거나 잊어버리면 그뿐입니다. 그런데 제조사에 연락해 부족한 부분을 짚어주는 분들이 있어요.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보완점을 찾을 수 있으니까요. 아이겟백의 경우 ‘전자렌지에 돌렸더니 금이 갔다’는 후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요. 그 말을 듣고 알틴5의 강도를 높여 아쉬운 점을 보완했습니다.”


안대와 알틴5는 별도 추가 구매가 가능하다. /더비비드

안대와 알틴5는 별도 추가 구매가 가능하다. /더비비드

알틴5는 반영구적으로 사용이 가능하지만 안대는 그렇지 않다. 오래 사용하면 헐거워지거나 닳을 수 있다. “올해로 아이겟백 출시 10주년이 됐는데요. 시간이 흐르다 보니 안대만 재구매하고 싶다는 문의가 자주 들어왔어요. 개별 문의를 할 경우 안대와 알틴5를 별도 추가 구매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토끼를 이기는 거북이

아이겟백을 들고 활짝 웃고 있는 정보영 대표. /더비비드

아이겟백을 들고 활짝 웃고 있는 정보영 대표. /더비비드

더이상 인공눈물에 의존하지 않는다. 아이겟백을 개발하고 눈 건강을 되찾았다. “독립 이후 아이겟백 외에도 수많은 상품을 출시했어요. 여성들의 생리통을 완화해 주는 ‘허브온팩·허리온팩’, 물리치료사의 테이핑 노하우를 담아 만든 종아리 전용 테이프 ‘다리피팅’, 탄탄한 모발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는 ‘탄모샴푸’ 등 종류도 다양하죠. 이제 눈 뜨는 시간엔 제품 개발 생각만 해요.”

제품 기획부터 출시까지는 평균 4년이 걸린다. 아이겟백을 개발할 때부터 그랬다. “새로운 제품을 출시했을 때 제일 듣기 좋은 말은 ‘이런 거 이미 있는 줄 알았는데 없더라’는 말이에요. 누구나 필요로 하지만 만들지 못했던 제품을 기어코 만들어 냈다는 칭찬으로 들리죠. 이미 잘 팔리는 아이템을 박리다매로 만드는 건 대기업이 잘하는 일이에요. 작은 스타트업이 대기업이란 골리앗과 싸우려면 ‘독창성’이란 무기는 필수라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제품 개발에 시간을 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좀 더디더라도 꾸준히 나아갈 겁니다.”